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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후 선수들의 모습

대한민국에도 다른 유럽이나 아메리카처럼 프로축구리그가 있습니다. ' K리그 '라 불리는 프로축구리그가 있는데 오늘은 이 리그 시작과 지금까지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월드컵과 해외에서 뛰는 손흥민, 김민재 선수 등으로 인해 한국축구가 많이 알려지긴 했고 더욱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유럽 팀만큼 지역 자체에서 관심을 가지고 크게 잡아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1. 한국 축구 리그 출범기

K리그로 바뀌기 전 처음 최상위 축구 리그는 실업 리그인 전국실업축구연맹전이었습니다. 프로축구 리그 창설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과 축구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이끌어 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한국 축구는 처음에는 빈곤한 축구 인프라와 국가대표팀의 부진으로 인해 실업리그가 점차 인기를 잃어 갔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더욱 떨어져 갔습니다. 1983년 3월에 대한축구협회 산하에 슈퍼리그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리그 창설을 하고 개막전을 4월 9일로 결정했는데 여러 가지 애로사항으로 인해서 5월 밀렸습니다. 

 

하지만 3월 12일에 개최한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꾀했고 관객들에게 무료 개방해서 많은 시민들이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하면서 관심을 가지게끔 했고, 5월 8일에 할렐루야 독수리 팀과 유공 코끼리 팀의 개막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2. 슈퍼리그 초기

첫 시즌이 끝나고 1984년에는 흥행과 함께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참가하면서 참가팀이 8팀이 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선교원, 대한석유공사, 대우, 포항제철, 럭키금성, 현대 등 6개 프로구단과 국민은행, 한일은행 2개 실업구단이 1984 시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뛰던 선수들이 국내에 복귀하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게 되면서 양과 질적인 부분에서 많은 향상이 되었습니다. 슈퍼리그라는 이름이 외래어의 남용이라고 해서 축구대제전이라고 명명하도록 했고 매체나 대중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명칭을 다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1985 시즌에 리그 확대가 되어도 모자랄 시기에 할렐루야 독수리 팀에서 단장이 선수단을 불러놓고 선교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팀 해체 의사를 밝히면서 참여하지 않았고 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1986 시즌에는 축구대제전과 별도로 프로구단만 참가하는 프로축구 선수권 대회를 신설하여 2개의 리그를 운영했습니다. 1987시즌에는 광역 지역 연고지 제도가 시행되어 구단들이 연고지를 확정하면서 홈을 가지게 되고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리그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프로축구위원회가 설립되어서 독립적으로 대회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실업구단과 프로구단 둘 다 참가 가능했던 축구대제전을 프로구단만 참가하도록 바꾸면서 한국프로축구대회로 명칭을 바꾸고 5개의 프로구단만 참가해서 진행되는 진정한 프로리그가 시작되었습니다. 리그 방식이 전기, 후기 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방식에서 단일리그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3. 리그 확장기

1994시즌에는 5년 만에 제7구단인 전북 버펄로가 최초의 호남 연고 구단으로 창단되어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광역 지역 연고지 제도가 부활하여 전라북도를 연고로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리그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코리안리그로 변경했습니다. 또한 이때 스포츠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십 제도가 도입되어서 대회 명칭에 리그 명칭과 스폰서 브랜드가 함께 들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코리안리그 최초의 타이틀 스폰서는 하이트였고 대회 명칭에 하이트배 코리안리그가 되었습니다. 1995 시즌에는 8 구단 체제로 리그가 더 확장되었습니다. 포항제철에서 두 번째 구단인 전라남도 연고의 전남 드래곤즈를 창단하여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9년 만에 다시 전기, 후기 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방식 운영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습니다. 1996 시즌에는 9 구단 체제로 늘어났는데 삼성전자를 모기업으로 하는 수원 연고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되어서 참여했습니다. 1997 시즌에는 대전 시티즌이 제10 구단으로 창단되어서 리그에 참여했고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참가 구단이 두 자릿수에 이르는 최대 리그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1998 시즌에는 월드컵을 맞아 리그 일정이 월드컵 이후로 미뤄졌습니다. 리그에는 4강 플레이오프가 도입되었고 이동국, 안정환, 고종수 등 대표적인 선수들이 등장을 하면서 리그가 흥행을 거두었습니다. 이때 한국프로축구대회에서 K리그로 명칭이 변경되어서 지금 명칭에 가장 가깝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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